2025/06/05 4

나의 친구에게

지영아. 오래간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다.살다가 한번씩 지금의 너를 찾아보자고옛날에는 없던 SNS를 뒤져보고특이했던 네 동생이름도 검색해보고그렇게 또 잊고 살아가다어느날 문득 너의 집이었던 곳을 찾아갔다가이미 재개발되어 사라진 낮은 아파트.떡볶이를 사먹던 시장.꼭대기를 향해가던 60번버스종점.지영아.그 어리던 날 너에게 무슨 일이 있언던 걸까.광복동 무아 음악감상실에서,감천동 꼭대기 전봇대옆에서,하얀 투피스를 입고 수줍게 서서나에게 안녕 인사를 보내던 조용하고 말수없더 내 친구야.나의 기억에 너를 추억하듯너의 기억에 나는 살아있을까.어느 하늘 아래서라도평온하게 웃으며일상을 살아가기를이제는 따뜻한 가정도 있고엄마도 아내도 되었기를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던광복동의 그 길을 꿈꿔본다.내 친구 지영아.아프지 않기..

밉지만 그리운 언니에게

언니, 나야.이 편지를 너는 아마 절대 못 보겠지만,그래도 언젠가 내 마음이 흘러가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어, 이렇게 써본다.언니, 나 정말 오래도록 너를 원망했어.네가 먼저 집을 나간 뒤,모든 가족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 어깨 위로 떨어졌을 때,나는 그저 너무 어렸고, 너무 무서웠어.“왜 나만 이래야 하지?”나는 늘 그 물음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고,그 중심에는 늘 언니, 네가 있었어.나 알아.네가 가출하던 날,너도 얼마나 무너졌는지,얼마나 외롭고, 지쳐 있었는지를.근데 미안해,그걸 이해할 만큼 나는 크지 못했어.그래서 너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잊으려 애썼어.몇 해 전,엄마가 많이 아팠을 때너를 떠올렸어.그때 문득, 그리움보다 죄책감이 먼저 밀려왔어.“혹시 너도,그때 나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네가 남긴 문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깐 집안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운영아 나 너희 집에서 잠깐만 신세 지면 안될까.방 구할 때까지만 부탁할게.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뱉은 말에너는 고민도 없이 생각도 하지 않고그래!라고 대답해줘서 고마워.그때 내가 너와 같은 방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웃는 법, 용기 내는 법, 할 말은 하는 법.나는 요즘도 한 번씩 생각나.우리가 자주 가던 동네 선술집.나란히 누워 고민을 털어놓을 때꼭 껴안았던 보드라운 베개.서로 아이 엄마가 되어도 지금 마음은 잊지 말자던 약속.운영아.나는 지금 개명도 하고 이사도 왔어.네가 남긴 문자도 기억해.나의 인생이 방향을 찾고 순항을 할 준비가 되면응원해 줄 테니 연락하라던 너의 정성어린 문자.너의 결혼이너의 출산이그렇게 세월이 흘러 20년은 훌..

어느 날 우연히 책갈피처럼 마음에 끼어든 추억을 따라

우연히 그날의 너를 닮은 사람을 마주쳤을 때오늘 오후, 햇살이 조금 기울 무렵버스 창문 너머로 스치는 얼굴 하나에문득, 너를 떠올렸어.그 사람은 너만큼 말랐고,걸음걸이도 너처럼 가볍고 조금 빠르더라.무심코 내렸던 버스 정류장 이름조차예전 우리가 함께 자주 걷던 그 길 근처였어.나는 그렇게 한참 동안익숙한 거리를 너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가문득 깨달았지.그땐 우리가 참 많이 웃었구나.이젠 네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기엔내 목소리도 낯설고,네가 대답해줄 일도 없지만그 시절을 꺼내보면왠지 모르게, 안아주고 싶어져.그때 우리가 참 아팠잖아.서로를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도 않았고상처를 꺼내 보일 용기도 없었고무엇보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었던 게가장 큰 오해였던 것 같아.가끔 그런 생각을 해.만약 우리가 지금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