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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깐 집안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운영아 나 너희 집에서 잠깐만 신세 지면 안될까.
방 구할 때까지만 부탁할게.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뱉은 말에
너는 고민도 없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래!
라고 대답해줘서 고마워.
그때 내가 너와 같은 방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
웃는 법, 용기 내는 법, 할 말은 하는 법.
나는 요즘도 한 번씩 생각나.
우리가 자주 가던 동네 선술집.
나란히 누워 고민을 털어놓을 때
꼭 껴안았던 보드라운 베개.
서로 아이 엄마가 되어도
지금 마음은 잊지 말자던 약속.
운영아.
나는 지금 개명도 하고 이사도 왔어.
네가 남긴 문자도 기억해.
나의 인생이 방향을 찾고
순항을 할 준비가 되면
응원해 줄 테니 연락하라던
너의 정성어린 문자.
너의 결혼이
너의 출산이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년은 훌쩍 지나고
너의 아들은 이제 장성하였겠구나
나의 모습도 늙어 중년이 되었구나
그 예쁘고 찬란하던 나의 친구는
어떻게 나이가 들었을까 궁금하다.
행복하자 친구야.
20년 동안 떨어져 소식도 끊겼지만
이제야 순항준비를 마친 나는
염치없어 너에게 연락을 못하고
부치지 못할 편지만 적어본다.
응원해줘 친구야
나도 너의 행복을 기원한다.
ㅡ먼 곳에서 너의 친구 개명 전 감순이가
이 글은 누군가의 부치지 못한 편지입니다.
읽고 싶은 사람만 읽어주면 돼요.
이 마음은 아직, 보내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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