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기억이 무엇인가요
높은 침상 위에 앉아 있던 나의 엄마. 하얀 반원 모양의 붕대가 왼쪽 귀를 감싸고 있었고, 그 모습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엄마" 하며 두 팔을 뻗었지만, 안아줬는지 외면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그 순간만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 장면은 마치 배경 없는 텅 빈 무대 위에 부유하는 사물처럼, 내 시야를 따라다녔다. 눈을 돌릴 때마다 오른쪽 위에서, 방바닥 아래에서, 혹은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서.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그 오래된 기억은 반복 재생됐다.
엄마는 쇠붙이 드러난 병원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손이 누구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 장면은 지금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얀 붕대를 두른 엄마의 얼굴, 나를 보는 눈빛.
베이지색 프릴 소매 끝이 달랑이던 내 어린 팔.
그리고 침대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던 쓰레기통과 마주하던 순간.
나는 무서워 울었고, 엄마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며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이내, 쓰레기통 앞에서 더욱 서럽게 울어버린 그 장면이
내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조각이 되어버렸다.
한참 크고 난 뒤, 그 기억이 진짜였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엄마에게 물은 적 있다.
“그걸 기억하냐”며 놀라는 엄마에게 “그때 몇 살이었냐”라고 되물었고,
남동생이 태어나고 석 달 후, 귀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태어난 지 33개월, 만 세 돌도 안 된 시절이었다.
놀랍게도, 그 기억은 단 한 번도 잊히지 않았다.
그 무서움과 당혹스러움은 마치 내 안에 둥지를 틀고
내가 자라는 만큼 함께 커졌고, 세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아련한 흑백 무성영화처럼 흐릿하게 느껴지지만,
그날의 공포는 어쩌면 내 내면 어딘가에서
한 번도 날 놓아준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단기 기억 상실 환자처럼,
그 병실에 들어가기 전도, 나올 때도,
누구 손을 잡고 있었는지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은 병실의 중간쯤,
내 눈높이에 딱 맞게 펼쳐지던 3초 남짓의 파편.
그 찰나가 내 어린 마음에, 아주 길고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훗날, 내 아이가 세 살이 되던 봄날의 아침.
머리를 예쁘게 까치집 지은 채, 꼴깍꼴깍 물을 마시던 아이는 꽃과 잔디도 물 먹여야 한다며
작은 손으로 나를 이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초록빛 잔디 끝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들에게
“꼬사 물머거. 나무야 물머거”를 외치며
앙증맞은 하늘색 물뿌리개로 물을 주던 모습.
나는 감나무 아래서 빨래를 널고 있었고,
그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에 웃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을 가르며 날던 까마귀가
‘까악!’ 하고 울어댔고,
아이도, 나도 그 순간 놀랐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소중한 물뿌리개를 던지고 내게 달려왔고,
나는 무릎을 꿇고 아이를 꽉 안았다.
그 품속에서 나는,
내가 아이를 안은 건지
아이에게 안긴 건지 모를 정도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랑을 느꼈다.
그토록 작고 소중한 생명을
안고 있는 순간.
내가 어렸을 적, 엄마의 품을 원하던 그 마음이
세월을 넘어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 듯했다.
사랑하는, 내 아가.

지금 너를 울리는 그 두려움보다 너를 가득 안은 엄마를 기억하길
네가 어른이 되어 가장 오래된 기억을 들출 때 그 기억이 두려움이 아니길.
기억나나요? 가장 오래된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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