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나누기

시절인연

중년언니 2025. 4. 1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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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어릴 적 함께 손가락 걸며 했던 약속이
정말 끝까지 이어질 거라 믿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그 시절 우리는 처음 친구가 되었습니다.
멀리서 전학 온 그 친구는 저랑 이름이 같아서 다른 친구들에게 큰김. 작김이라 불렸어요.

방학이면 서로 집에 눌러앉아 컵라면을 나눠 먹고 시험기간에 같이 밤샘도 했지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같은 학교로 진학했고 시험이 끝난 날이면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도
생일이나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아직도 아주버님은 장가 안 가셨어?”
“너는 애가 커서 좋겠다.”
늘 그렇게 서로의 삶을 나누고 이어갔습니다.

그런데요,
언제부터인가 대화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 말을, 그 친구는
“그건 네가 바보 같은데?”
"그렇게 살면 너만 호구되"
"신랑은 뭐 하고 맞벌이해?"
그 친구가 던진 말에
마음이 다치곤 했습니다.
그 말들이 친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습니다.
저는 친구지만 그런 말은 못 하겠거든요.

어느 날 통화를 마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같은 생각이 아니구나, 다르구나.’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엄마 편을 들어야 하고,
남편이 돈을 벌어와야 정상이며,
여자가 목소리를 키워야 편해진다, 그런 말들요.

그 친구는 중산층의 여유로운 전업주부로 살아왔고,
저는 맞벌이로, 아이와 남편 사이에서 치이며 버텨온 삶이었습니다.
아직도 버티며 사는 삶이지만, 힘들지만 저는 이 삶을 감사하고 살고 싶거든요.

환경이 달라지니, 생각도 달라졌고,
가치관도, 말투도, 웃음의 타이밍조차 달라졌습니다.

결국,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친구의 카톡을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일을 쉴 수 없는 직장 때문에 주말에나 만날 수 있다는 저에게 친구는 그런 직장을 어떻게 다니냐고 하더라고요.

마음 아팠다. 그런 말 안 했으면 좋겠다 등등 할 말은 많았지만 그냥 차단했습니다.
전화번호도 바꿨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저, 시간이 만들어낸 간극이었을 뿐입니다.

어릴 적 그렇게 잘 맞았던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며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이제 저에게 친구와의 우정은 그 시절에 잠들어 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어설프게 꺼내면 흠집이 날까 두렵거든요.

지금은, 사진첩 속 웃고 있는 우리 모습을
가끔 꺼내어 봅니다.
둘이서 놀이동산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 모습.
그 시절의 우정은 분명 진심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든
그저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게,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따뜻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깊은 친구에게 상처를 받거나 준 적이 있나요. 상처가 아니라 상황이 그리되어 연이 끊어진 친구가 있나요.
시절인연이 되어버린 친구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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