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나누기

나도 남편도

중년언니 2025. 4. 1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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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는 대화를 원해
우리 얘기 좀 해요.


“요즘 왜 그렇게 말이 없어요?”

내가 그렇게 묻자, 남편은 고개를 돌렸다.
어떤 대답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듯, 묵묵히 티브이만 바라보았다.

겨울에 가까운 바람이 창문 틈을 파고들고 있었다.
처음엔 무심한 하루가 평범하다고 여겼다.
지치고 바쁜 삶 속에서도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게 우린 오래된 사랑의 증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오래됨’이 익숙함을 지나
무심함이 되고, 무심함은 곧 벽이 되었다.

결혼 25년 차.
아이는 다 커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남편과 나는 다시 둘이 남았다.

처음엔 좋았다.
서로만 있으면 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우리 예전처럼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자.”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땐, 그도 미소 지었다.
짧게나마, 확신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대화가 줄어들었다.
아니, ‘피한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어디 다녀왔냐는 말도,
오늘 하루 어땠냐는 관심도 사라졌다.

식탁에서 함께 앉아 밥을 먹지만
우리 사이엔 음식보다 더 많은 공백이 놓여 있었다.

“당신 요즘 왜 그래?”
그 질문을 다섯 번쯤 했을까.
남편은 "내가 뭐"
라며 대답을 회피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나에게 마음이 떠난 것도 외도가 의심되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남편이랑은 완전 룸메이트지경이야.”

그 말이 우스갯소리였는지,
비명 같은 농담이었는지는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저, 외롭다고.
같은 집,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라져 가는 온도를 느끼는 일이 버겁다고.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감성적이라서,
내가 너무 말하고 싶어 해서,
내가 너무 기대했기 때문에 생긴 실망일지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 억울하다.
왜 나만 노력해야 하는 건지,
왜 나만 이 관계를 살리려 애쓰는 건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마음을 건네고 싶었다.
그저, 그가 내 말에 반응해주기만 해도 괜찮았는데…


지난주엔 일부러 그가 좋아하던 된장찌개를 끓였다.
그가 좋아하던 깊은 맛, 그 향기.

말없이 식사가 끝나고 조용히 "맛있네"라며 웃는 그 사람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말이 사라지면
마음도 같이 사라질까 봐,
그래서 나는 매일 무언가를 꺼내려 애썼던 것 같다.

대화가 사라진 부부 사이엔
의외로 많은 것들이 버티고 있다.
공과금, 냉장고 정리, TV 소리, 시계 초침, 그리고...
기억.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남편도 힘들었던 거라고, 나의 감정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의 감정도 내가 봐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만 갱년기가 아니라
남편에게도 갱년기는 온다고

우리가 말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상대방의 마음도 봐주세요
당신도 그런 날이 있다면,
이곳에 조용히 마음을 남겨주세요.
저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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