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엄마의 시간
아들의 방 문 앞에 멈춰 섰습니다.
문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호주로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방 안 공기는 여전히 그 아이의 손길로 가득했습니다.

떠들썩하게 짐을 챙기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젠 그 빈자리가 너무도 조용합니다.
“엄마, 금방 다녀올게.”
마치 친구 집이라도 다녀오는 듯, 그렇게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매일 아들의 방 앞에 섰다가 돌아섭니다.
청소기를 들었다가도 이불을 그냥 놔두고, 창문을 열었다가도 다시 닫습니다.
그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싶은 제 마음이
그 공간을 함부로 치우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실 유학 준비는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아들도 설레어했고, 저 역시 기특하다 여겼습니다.
입학 허가서를 받았을 땐 온 가족이 웃었고,
출국 당일엔 “잘 다녀와”라고 밝게 인사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 너머에 어떤 감정들이 있었는지는 아들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선명해졌습니다.
허전함은 생각보다 더 깊었고,
그 아이가 매일 제 일상을 얼마나 채우고 있었는지를
저는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엔 아들이 좋아하던 토스트를 굽고,
퇴근 후엔 무의식적으로 그의 방문을 두드리곤 했습니다.
그런 제 행동이 익숙하듯 반복되다가,
문득 “아, 없지…” 하고 현실을 자각할 때의 쓸쓸함은
가슴 깊숙한 곳을 건드립니다.
지금쯤 호주에서 자리를 잡고 있겠죠.
그곳은 여기보다 계절이 반대일 테니,
옷은 잘 챙겼을까요.
익숙지 않은 침대에서
낯선 언어로 하루를 견디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제가 견뎌야 할 이 고요도,
그저 제 몫이겠거니 싶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그 아이를 잘 떠나보내는 일이라고.
머리로는 그 말을 이해했지만,
가슴은 여전히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보면
누군가는 “오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모든 것을 아이에게 쏟아부은 엄마라면,
이 감정을 이해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주말엔 가족이 함께하던 식탁이 허전합니다.
세 개 놓았던 수저를 두 개만 꺼내게 되는 순간,
그때부터 식사는 ‘행위’가 아닌 ‘기억’이 됩니다.
아들이 웃으며 국을 리필하던 모습,
어디선가 장난스레 부르던 “엄마~” 하는 그 목소리…
모든 게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그 아이가 떠난 건 단지 ‘공간의 부재’가 아니었습니다.
제 삶에서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던 리듬이 무너지고,
내면의 중심축이 잠시 흔들린 느낌이었습니다.
빈둥지증후군.
그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땐 남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의 깊이를 체험하고 나니,
이건 병명으로 불릴 만한 ‘감정의 상실’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고, 식욕도 줄고,
사람을 만나기도 꺼려지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잘 있는 거 아시잖아요.”
“영상통화 자주 하신다면서요.”
주변의 말들이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가끔은 마음을 더 쓸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건 얼굴이 아니라,
그 아이가 문 열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들어오던 그 찰나의 따뜻함입니다.
요즘은 제가 저를 다시 들여다보려 노력 중입니다.
처음엔 억지로 시간을 채웠습니다.
정리해 두었던 책을 꺼내 읽고,
오래 미뤄둔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억지였지만, 지금은 조금씩 내 시간이 되어갑니다.
텅 빈 방을 바라보며 우울해하기보다,
그 방을 통해 제 인생의 또 다른 챕터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아들을 유학 보내고 난 후
처음으로 제 인생이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삶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 것일 뿐이었지요.
그 걸음에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저도 제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이 시기의 부모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도
비슷한 마음을 안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댓글로 들려주시면
함께 위로받고, 또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시간이 따뜻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