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못한편지함

엄마의 무릎

중년언니 2025. 6.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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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자리가 엄마 무릎인 줄 알았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 속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가 엄마 치마를 꼭 붙들고 걷던 기억.

잠이 덜 깬 채 유치원 버스를 타야 할 때면, 엄마는 늘 나를 무릎에 안아 식탁 의자에 앉았다.

엄마 무릎은 언제나 따뜻했고, 늘 나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감싸주었다.

그 무릎이 작아졌다는 걸 깨달은 건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어느 날, 친정에 들렀다가 잠깐 앉은 엄마의 다리를 문득 보았다.

많이 야위었고, 무릎 아래는 푸르스름한 멍과 핏줄이 얽혀 있었다.

나는 괜히 허리를 피며 앉았고, 엄마는 조용히 다리를 주물렀다.

“요즘은 조금만 오래 걸어도 무릎이 욱신거려.”
말끝을 흐리는 엄마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그토록 넓고 푸근했던 무릎이 세월에 지쳐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엄마는 이제 내게 기댄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무릎이 나를 안아줄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쉼 없이 움직이는 근육과 뼈,
그리고 당신이 감당해야 했던 모든 짐 덕분이었다.

빨래를 널며, 쌀을 씻으며, 무릎 꿇고 기도하며
엄마는 하루의 대부분을 당신 무릎 위에서 버텼다.

나는 이제 가끔 엄마 무릎에 파스를 붙여드린다.
무릎 주위에 돌돌 감긴 파스는 마치,
내가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작고 서툰 위로 같다.

엄마는 가만히 웃으며 말한다.
“이렇게 네 손으로 받는 날이 오다니, 참…”
그 뒷말은 흐려졌지만, 엄마의 눈동자는 분명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자라고
나의 무릎도 언젠가 작아지겠지.

그럼 나는,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만큼
내 아이에게,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내게 기댈 엄마에게
따뜻한 무릎이 되어줄 수 있을까.

엄마의 무릎엔 세월이 쌓였다.
눈물이 마른 자리도,
기쁨이 솟구치던 순간도 모두 그 안에 있다.
이제야 보인다.

그 무릎이 얼마나 아팠을지.
얼마나 버텼을지.
얼마나 포기했을지.
얼마나 사랑했을지.

엄마,
나 지금도 당신 무릎을 기억해요.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나는 언제나 안겼던 아이였어요.

이젠 제 무릎을 내어드릴게요.
잠깐이라도, 아무 생각 말고
그저,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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