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못한편지함
새벽마다 등불처럼 깨어 있던 아버지께
중년언니
2025. 6. 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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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요즘은 이상하게도 새벽에 자주 눈이 떠져요.
아직 세상이 잠든 그 시간에, 당신이 늘 앉아 계시던 부엌 불빛이 생각나요.
식탁 위엔 조용히 놓인 신문과 고요히 끓던 주전자 소리,
그 시간은 늘 아버지 차지였죠.
출근보다 한참 전부터 일어나,
묵묵히 하루를 준비하던 당신의 뒷모습이
그제야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는지 알 것 같아요.
그땐 왜 그렇게 조용하셨을까요.
딸인 제가 물 한 잔 뜨러 부엌에 나가면
그저 "응, 일어났어?" 하고 웃던 표정.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피로와 책임감이 있었는지
이제는 조금씩 느껴져요.
당신이 마신 커피 향이,
당신이 펴던 신문의 부스럭거림이,
이제는 제 새벽과 닮아 있네요.
아버지,
말은 별로 없으셨지만,
그 새벽이 당신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을 위해 하루를 먼저 시작하고,
아무도 모르게 마무리했던 그 시간들.
그게 당신의 사랑이었다는 걸
왜 이렇게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었을까요.
당신이 계셨던 그 시간의 공기는
지금도 여전히 따뜻해요.
잠결에 듣던 컵 놓는 소리,
조용히 열리는 현관문 소리,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지만
제 기억 속 어딘가에 늘 살아 있어요.
아버지,
그 새벽들, 그 고요한 헌신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저도 새벽에 눈 뜨면
당신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거예요.
– 당신의 딸이
누군가는 여전히,
새벽에 깨어
사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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