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못한편지함

이미 떠버린 해 조차도 재미있던 그 시절

중년언니 2025. 6. 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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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기억나?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겠다며, 내 생애 첫 차에 너를 태우고 정동진까지 같었지.
네비도 없던 시절 지도를 펼쳐가며 엉금엉금.
눈 쌓인 길, 피곤한 눈, 급하게 편의점에서 집은 삼각김밥.
우린 그래도 좋다고, 히히덕대며 숙소로 들어갔지.

근데 말야,
결국 해는... 우리가 자는 사이 먼저 떠버렸더라.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을 땐,
이미 날은 밝아 해가 중천에 떴고,
그 밝은 하늘 아래에서 우리 둘은 뻘쭘한 얼굴로 마주 앉아 웃었지.

“야, 우리 인생도 이렇게 어긋나겠지?”

내가 농담처럼 말했을 땐,

네가 “그래도 같이 어긋나면 괜찮지”라고 말했었는데. 서로의 새해를 축하하고 잘해보자 했건만.

그게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어긋난 건… 결국 너와 나였으니까.

같이 일을 하고, 야근도 하고, 편의점 컵라면에 소주도 마시고,
너 없으면 나 회사 못 다닐 거라 생각할 만큼 끈끈했는데.

그 ‘믿음’이라는 이름을 건너뛰고
네가 내 뒤에서 내 도장으로 장난을 칠 줄이야.

나는... 정말이지,
해보다 먼저 가버린 게 너 같아서.
해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었어.

울면서 너에게 확인을 할 때,
사실 마음 한 켠은 "혹시 미안하단 말 해주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했었어.
근데 넌 조용했지.
그 뒤로 영영, 아무 소식도 없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젠 그때 그 차도 없고,
그때 입었던 후드티도 언제부터 사라졌고,
정동진도 더 관광지처럼 변했다더라.

그런데 이상하지,
가끔 해가 뜨는 하늘을 보면
그날 네가 내 옆에서 웃던 모습이 떠올라.

그 해는, 너무 예쁘지도 않았고
아무도 감탄하지 않았지만
나한테는 이상하게 선명하게 남아있어.

너는 그날의 우리 기억하고 있을까.
배신이라는 말 앞에서 다 무의미해졌겠지만,
적어도 그때 우리 진심이었잖아.
웃었던 것도, 기대했던 것도, 약속도.

너를 미워했던 날보다
그때가 그리운 날이 많아져서
이 편지를 써본다.

이젠 말할 수도 없겠지만—
제대로 살아왔길 빌어.
그리고… 행복하길 빌어.



이 글은 누군가의 부치지 못한 편지입니다.
읽고 싶은 사람만 읽어주면 돼요.
이 마음은 아직, 보내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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