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못한편지함

빗 속의 말 한마디

중년언니 2025. 6. 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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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사람: 빗속의 너와 나에게

보내는 사람: 익명

부치지 못한 날짜: 2012년 6월 5일

그날 너는 우산이 없었고,
나도 우산이 없었어.
우리는 빗속에서 서로를 보며 웃었지.
민망한 듯이, 서툰 듯이, 그리고 어쩐지 조금 서글프게.

나는 내 어깨보다 조금 낮은 너의 머리를 바라보며 속삭였나봐.

“비에 젖는 거, 그렇게 나쁘진 않지?”라고 말했었지.

넌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어.

그 대답 없는 고개가
그날 이후 자꾸 생각나.

너의 젖은 정수리
너의 끄덕임

너와 나 사이에는 늘 뭔가 하나쯤 비어 있었던 것 같아.
우산 하나, 말 한마디, 약속 같은 것들.
그게 늘 마음에 걸리지만
이제 와서 그걸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시간이 지나고, 나는 같은 거리에서
누군가와 우산을 나눠 썼지만
너와의 그 젖은 오후만큼 선명하진 않았어.

그날의 너는,
내 마음에서 아직 마르지 않았어.



이 글은 누군가의 부치지 못한 편지입니다.
읽고 싶은 사람만 읽어주면 돼요.
이 마음은 아직, 보내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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